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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3

[좋은시] 문정희- 부부 ​부부 -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꽃 만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 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 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 2015. 6. 2.
[좋은시] 문정희- 남편 남편 -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 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2015. 6. 2.
[좋은시] 장정일-충남 당진 여자 충남 당진 여자 장정일 어디에 갔을까 충남 당진 여자 나를 범하고 나를 버린 여자 스물 세 해째 방어한 동정을 빼앗고 매독을 선사한 충남 당진 여자 나는 너를 미워해야겠네 발전소 같은 정열로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 그녀를 나는 미워하지 못하겠네 충남 당진 여자 나의 소원은 처음 잔 여자와 결혼하는 것 평생 나의 소원은 처음 안은 여자와 평생 동안 사는 것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 처음 입술 비빈 여자와 공들여 아이를 낳고 처음 입술 비빈 여자가 내 팔뚝에 안겨주는 첫 딸 이름을 지어주는 것 그것이 내 평생 동안의 나의 소원 그러나 너는 달아나버렸지 나는 질 나쁜 여자에요 택시를 타고 달아나 버렸지 나를 찾지 마세요 노란 택시를 타고 사라져버렸지 빨개진 눈으로 뒤꽁무니에 달린 택시 번호라도 외워둘걸 그랬다 어.. 201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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